2025년 9월 21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 70장(피난처 있으니)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3:9
5. 설교
제목 : 사역으로 세워지는 교회
바나바와 사울은 구레네섬에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다 행정중심지인 바보에 도착하여 로마 총독인 서기오 바울을 만나서 그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서기오 바울은 지혜가 있는 자였기에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 때 총독의 궁중마슬사였던 바예수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힘을 썼습니다. 구원받은 자와 멸망받을 자의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훼방을 받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라고 나와 있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를 소개하며 가장 먼저 바나바를 언급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사울을 언급했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순서는 중요합니다. 먼저 언급된 사람이 더 중요한 인물입니다. 가나다 순서가 아니예요.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킨 인물이었기에 사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먼저 언급된 것이었습니다.
13장 2절에서도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도 바나바를 앞세웠습니다. 7절에서도 서기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라고 했습니다. 일관되게 바나바가 사울을 앞섰습니다. 복음사역에서 바나바가 주고 사울이 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름만 나왔습니다. 바나바는 그 이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복음사역의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바울이 주가 되고 바나바가 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8장 2절에 남편인 아굴라와 아내인 브리스길라라는 부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후 18절부터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순서를 바뀝니다. 당시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여자는 사람의 수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옵니다. 아내가 교회와 사역에서 더 핵심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의 이름만 나온다는 것은 바울이 단독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사역의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나바와 바울의 위치를 역전시켰을까요? 오늘 말씀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사역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부터 진행되는 복음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 바울이라는 뜻입니다. 세대교체입니다. 임명식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오로지 사역입니다. 누가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가?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었습니다. 연공서열이나 나이 따지지 않았습니다. 학벌이나 로마의 시민권이나 재산을 따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것만을 따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바울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바예수를 주목했습니다. 바로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로 사도행전은 바울을 바나바 앞에 내세우며 바울을 통해서 이방선교의 역사가 진행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사원칙입니다. 철저히 사역중심적입니다.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 주목하시고 그를 세우십니다. 나이 따지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장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존경과 섬김입니다. 나이가 사역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에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가인이 형임에도 온전한 제사를 드린 아벨을 택하셨습니다. 형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셨습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열 한 째인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형 아론이 있었음에도 출애굽의 사역으로 선택받은 자는 모세였습니다. 아론도 탁월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도 유력한 지파인 에브라임과 유다 출신이 아닌 가장 미약한 지파였던 베냐민 출신의 사울왕이었습니다.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도 탁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위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기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막내였습니다. 다윗은 탁월한 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역중심으로 일꾼들을 세우셨는 지 성경은 냉정하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장자로서 받을 축복이 있습니다. 존중이 있습니다. 두 몫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역에서는 냉정합니다. 연공서열 없습니다. 남녀차별 없습니다. 누가 그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가! 이것만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통해서 장남이 아닌 차남을 부각시키신 것입니다. 탕자도 둘째였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처음에 거절했다가 결국 순종한 아들도 둘째였습니다. 나이 가지고 따지지 말라는 거예요. 외적인 조건을 들이댈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자가 누구인가? 이것만을 보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도 바나바를 생략하고 과감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완벽하게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따지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따집니다. 민증을 먼저 까야 합니다. 나이가 많아야지 말발이 섭니다. 물론 오랜 인생의 경험으로 지혜가 풍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에서는 더 젊은 사람에게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교회 안에서도 이런 원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사역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각각의 사역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다. 나이, 성별, 학벌, 재산 등등 따지면 안 됩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죠. 그 직분을 감당할만한 사람에게 직분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는 직분에 합당한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실해도 돈 없으면, 좋은 직장 없으면, 학벌 좋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직 믿음이 연약해도 헌금 많이 하면, 좋은 직장이 있으면 직분자가 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힘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사명 위주로 직분자를 세우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물론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나온 것처럼 새로 입교한 자는 안 됩니다.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예전에 해외에서 사기를 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자마자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나가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의 권사님들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젊은 남자 청년이 새벽기도회 나가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그러면서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 딸과 결혼시켜 사위를 삼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사기꾼이었던 거예요. 이처럼 믿음의 연수가 짧은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좀 줘야 합니다.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 체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났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에 맞춰서 일을 맡겨야 합니다. 다른 조건들은 고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분명한가? 그것을 잘 감당할 수 있는가? 이것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연소할지라도 그 사명이 분명하면 헌신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죠. 자녀들에게 무조건 돈 많이 버는 직장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내 자녀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무엇인가? 세밀히 살피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와 똑같은 원리죠.
문제는 내뺀다는 것에 있습니다. 분명히 달란트가 있어서 그 사명을 감당하면 좋은 데 안 한다고 뒤로 물러난다는 거예요.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안 되죠. 그러나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기려고 해도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아름답다 말씀하셨습니다. 악어가 득시글하는 나일강에서 건져서 애굽의 왕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40년간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리더로 양육하신 거예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미디안광야에서 40년간 온유함의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외적인 능력과 내적인 성품을 모두 다 준비케 하셨습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난 뒤에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해내라! 말씀하셨을 때 모세는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저는 입이 뻣뻣하고 둔한 사람입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안 가겠다는 거예요. 하기 싫다는 것이죠. 사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예요. 그래도 헌신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혼나고 애굽으로 가서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이뤘습니다.
이런 모세와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달란트가 없다고 말합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말합니다. 맞나요? 틀리죠!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냐 두 달란트냐 한 달란트냐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뭔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 받은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앞장 서야 합니다. 물론 교회는 달란트에 맞는 사역을 만들어 주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온전히 세워집니다.
안식년 기간 동안 대형교회에서 아침 일찍 예배하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저 사람들은 뭘 할까? 그들에게도 달란트가 있는 데 교회가 그 달란트를 가지고 헌신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교회가 한 달란트 받고 땅에 묻어두는 성도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죠. 그럼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역자입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헌신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사역을 시키려고 하실까요? 고생시키려고요? 아닙니다. 무노동무임금 때문입니다. 일하는 자들에게 삯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시면 헌신하겠습니다! 이런 거래는 하지 마세요.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보시고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삶의 행복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주시는 이유는 일시키기 위함이죠. 그것으로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헌신하는 모든 대흥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 215장(내 죄 속해 주신 주께)
주기도문
기도제목
1. 외적인 조건 따지지 않고 사역을 중심으로 교회가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거절하지 않고 담대히 나를 써 달라고 외치며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일하는 자에게 복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더욱 충성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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