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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일 주일/가정 예배모범
운영자 2025-05-31 추천 0 댓글 0 조회 10

202561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36(주 예수 이름 높이어)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2:4-10

5. 설교

 

제목 : 다 이루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런 악행을 저지를 때 유대인들은 기쁨으로 동조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지를 확인한 헤롯은 힘을 얻어 더 큰 악행에 착수합니다. 그것은 당시 교회의 대표인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를 죽였을 때 이 정도의 지지라면 베드로를 죽이면 지지율이 더 오를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 기대를 갖고 헤롯은 베드로도 잡아 감옥에 가뒀습니다. 옥에 가두고 군인들로 하여금 밀착 감시를 했습니다. 쇠사슬로 몸을 묶어 도망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나 도망갈까봐 군인들을 옆에 붙여 놓았습니다. 심지어 파수꾼을 세워 감옥 밖에서 감시하게 하고 잠을 자는 베드로의 양 옆으로 군인들이 함께 잠을 자게까지 했습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베드로를 끌어내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칼로 베드로를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이 때 교회는 모여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는 첫 핍박을 받았습니다. 다시 부흥되려는 찰라 야고보 사도가 순교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2차 박해가 가해질 것이 너무나 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잡혀 갔습니다. 베드로가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에도 교회는 큰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한 공동체의 리더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공동체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 승천 이후 교회를 이끌어 오던 베드로가 잡히게 되었으니 교회가 얼마나 두려워했겠습니까! 그 두려움으로 모여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베드로에게 보내셨습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옥중에 광채가 빛났습니다. 그런데 군사들이 깨지 않았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환한 빛이 비추게 되면 깰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군사들이 깨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베드로를 깨웁니다. 급히 일어나라 말합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두 손에 채워져 있었던 쇠사슬이 벗겨졌습니다. 천사는 베드로에게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라 명령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나오면서도 꿈이라 생각했습니다.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났습니다. 파수꾼들도 베드로를 못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쇠문 앞에 다다랐을 때 쇠문이 자동문처럼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렇게 감옥에서 나와 거리에 서게 되었을 때에 천사가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섬세한 손길로 베드로를 감옥에서 꺼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천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알 수 있죠. 그런데 다른 측면으로 보면 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친절하신가? 왜 이렇게 베드로를 아끼시는가? 차별이나 편애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야고보는 그냥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헤롯에게 잡혀서 칼로 비참하게 죽을 때 하나님께서 어떤 도움을 주신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도 마찬가지죠. 돌에 맞아 죽게 내 버려 두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살려주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천사를 보내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심으로 베드로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왜 야고보는 죽이시고 베드로는 살리셨을까요?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일까요? 아니죠! 베드로가 잡혔을 때만 교회가 기도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가 잡혔을 때에도 스데반이 공회에 잡혀 들어갈 때에도 교회는 모여서 힘껏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야고보는 죽이시고 베드로는 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사랑하시고 야고보는 사랑하지 않으셨나요? 아니잖아요!

오늘 말씀에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봐야 합니다. 그럴 때 베드로를 살리신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때문입니다. 차별 때문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 마쳤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거둬가신 것입니다. 스데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살아 있으면 더 큰 일을 했을 수도 있죠. 그러나 이건 우리의 생각 뿐입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신 사명을 다 마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을 거둬 가십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명이 남아 있는 한 어떤 두려운 환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결코 그 생명을 거둬가지 않으십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모세는 사명과 생명, 사명과 건강과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 부름 받았습니다. 많은 나이죠.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120세까지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가나안 땅 바로 앞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모세의 나이 120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살려두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끔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모두 사랑하십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차별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다만 야고보는 그 사명을 마쳤기에 불러가셨고 베드로에게는 남아 있는 사명이 있었기에 살려두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사명은 앞으로 볼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것처럼 교회의 수장으로서 이방선교의 지침을 만들고,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역을 위해 베드로가 꼭 필요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살려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로 대속사역을 다 마무리하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기에 승천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 감당했기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사명의 관점에서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물질을 다룹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아직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임에도 생명을 취하여 가신다면 사명이 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많도록 생존합니다.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차별이 아닙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건강을 주셨다면 사명을 위해서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때로는 병든 몸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물론 병든 몸이 나의 불순종과 죄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거기에도 사명이 있습니다. 병든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잡혀 가지도 않게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일단 잡혀 가게 하시고 죽을 날을 확정짓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살려내심으로 인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몸의 질병과 아픔에도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명인가? 이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우리가 보여줘야 할 지혜입니다.

그 놀라운 지혜를 송명희사역자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 라는 찬양을 만들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이 찬양을 통해서 뇌성마비라는 육신의 연약함에 하나님께서 두신 소명을 고백했습니다. 건강함만이 소명이 아닙니다. 어떤 아픔과 질병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며 이웃을 위로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취하여 가십니다. 반면에 육체적인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픔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생명에 힘과 영광을 더하실 줄 믿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사명을 위해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재물입니다. 왜 나에게 재물을 주셨는가? 물질을 주셨는가? 고민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힘으로 번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번 것이라고 하면 영원히 내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을 때 우리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 소유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사명을 위해 재물을 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재물을 더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고 재물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만 쓴다면 하나님께서 그 재물을 빼앗아 가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내게 주신 재물을 어디에 썼는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서 기꺼이 내 재물을 쓴 것이 있나요? 아니면 그저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었나요? 사명을 위해 재물을 사용할 때 하나님은 더 채워주십니다. 사명이 없는 재물사용은 재물을 잃는 길이 됩니다.

우리의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이건 내게 주셨을 때에는 사명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이 훌륭한 교육을 받게 하신 이유는 그들로 성경을 기록하는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있는 놀라운 지식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에게 주신 지식이라는 재능을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만 씁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국민들에게 조롱을 받고 멸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배우고서도 가방끈 짧은 사람들에게도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지식과 재능을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생명이 있죠. 우리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 재물, 지식, 재능 그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을 위한 사명을 위해 어떻게 쓰이고 있나요? 긴요하게 잘 쓰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나만을 위해서,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다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지금은 내가 사명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명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우리에게는 오늘이 그리고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 사명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많은 것을 쌓아두고 배 두드리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취하여 가실 수 있습니다. 삭개오처럼 그날 바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빼앗은 것은 네 배를 갚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땅의 삶을 마칠 때 다 이루었다 외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찬송 : 323(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주기도문

 

기도제목

 

1.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사명을 위해 맡겨 주신 것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생명, 건강, 물질, 지식과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미루지 않고 오늘 그리고 바로 지금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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