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대흥교회 주일/가정예배
1. 회개기도 -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지기를 기도합시다.
2. 사도신경 고백
3. 찬송 – 31장(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4. 말씀읽기 - 사도행전 11:24
5. 설교
제목 : 착한 사람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이 바나바에 대해서 성경은 착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다, 말을 잘 한다, 능력이 좋다 이런 표현이 없이 단순히 착한 사람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일꾼을 택하는 기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능력이 아닌 성품입니다. 능력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길 때에도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능력은 골리앗이 더 세죠. 다윗의 전투력은 평범 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품은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랜 시간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능력보다 성품을 먼저 따졌습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을 골랐습니다. 그 착한 사람이 바나바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착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말하는 착하다는 기준은 좀 애매합니다. 어떤 사람이 봤을 때는 착한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리석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범죄자를 잡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 정말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 데 이렇게 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착하다는 것이 얼마나 애매한 개념인지 잘 알려주는 예입니다.
그래서 착하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해 줘야 합니다. 무엇이 착한 것인가? 오늘 말씀은 분명히 짚어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착하다는 것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믿음은 성령 곧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곧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밝히 알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말씀을 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순종과 동의어입니다. 좋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착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말씀에 잘 순종하면 착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들이 착한 삶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비판하지 말라. 사랑으로 종노릇하라. 후히 나눠주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잇속 챙기지 말고 기꺼이 섬기며 나눠주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에 순종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말씀과 상관없이 그저 착한 사람이 되라고 유혹합니다. 일단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안 그렇습니다. 말씀을 따르지 않는 착함은 악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성경적부모교실이라는 세미나를 들었습니다. 한동대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여자 분이셨어요.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1980년대 햄이 반찬으로 들어왔을 때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햄을 사다 먹였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착한 일을 한 거예요. 그 당시에는 햄이 비싸서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고 햄을 사서 먹였던 것입니다. 아이들도 햄 좋아하잖아요.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착한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햄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난 뒤에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착한 엄마였지만 결국 아이들에게 나쁜 것을 주는 엄마가 되었던 거예요. 가끔 공항에서 착한 일을 하다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건 좀 옮겨 달라고 해서 도와줬는 데 그것이 마약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난 그저 착한 사람이었는 데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착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착하다고 말을 듣지만 결국 나쁜 것이 되니까요.
지난 4월 21일 교황이 사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라고 불렸던 교황이었습니다. 추기경이었을 때에도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던 검소한 사람이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도 이름만 묘비에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건 그렇지 않건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착한 삶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착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착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는 지도 바라봐야 합니다. 교황의 유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내 생애 전반과 사제 및 주교로서의 사목 여정 동안, 나는 언제나 우리 주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나 자신을 의탁해 왔다.’누구에게 자신을 의탁했다고요? 예수님인가요? 아니죠.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를 믿었다는 겁니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데오도코스 즉 신의 어머니라고 높여 말합니다. 신보다 더 높은 분처럼 여기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아닌 마리아에게 자신을 의탁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죠. 교황의 유언에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나의 뜻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어머니께 맡기고’마리아에 대해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 표현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황은 마리아를 원죄없이 잉태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의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죠.
그의 착함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착함은 말씀에서 나온 착함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미혹당하고 있습니다. 실상 교황이라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특별한 예복을 입으시거나 왕궁 같은 곳에서 지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교황은 세속의 권력자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군림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이라면 교황이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비진리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몇 가지 착한 모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그로 인해 사람들이 비진리에 속하게 되면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이단들이 그렇잖아요. 헌혈하는 데 수천명씩 나서서 합니다. 산불이나 재해가 발생하면 가서 돕기도 하고 돈도 많이 냅니다. 거리를 청소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받은 상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착한 일입니다. 그 착함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이단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그들이 행한 착한 일에 끌려서 이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문제없다고 봐야 하나요? 아니죠! 문제가 있죠. 아무리 착한 일이라고 해도 말씀에 의한 착한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진리 안에 있으면 정말 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착한 삶을 명령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성교회들은, 기성기독교인들은 말씀을 자랑하고 진리를 자랑하면서도 그 삶은 착한 것에서 거리가 멉니다. 세상보다 더 돈에 욕심을 부립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입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다투고 싸웁니다. 차별하고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교회 주변의 이웃들과도 얼마나 많은 다툼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 몰라요.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욕심덩어리라고 비난합니다. 자기들밖에 모른다고 정죄합니다. 이런 악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진리를 수호한다고 말하죠! 황당하죠! 착각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정말 진리가 있다면 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가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독한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진리를 가진 성도가 좋은 열매 즉 착한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단들이 더 나은 거예요. 이단에도 진리가 없고 기성교회에도 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착한 일은 이단들이 더 많이 해요. 그러다보니 이단으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예요. 기성교회에 가면 무시하고 차별하고 다투고 싸우는 데 이단에 가면 포근히 감싸주고 사랑하고 섬겨줍니다. 물론 속내를 숨기는 것이지만 사랑의 모습으로 위장합니다. 그러니 이단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나바를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오는 착함입니다. 그럴 때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졌습니다.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착한 사람들로 인해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다들 힘들고 어렵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만치 않잖아요. 위로와 격려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태로 교회에 나왔는 데 교회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요? 용서로 가득 차 있으면요? 섬김으로 가득 차 있으면요? 나눔으로 가득 차 있으면요? 왜 그 교회를 다니지 않겠습니까? 왜 그 교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완벽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다들 부족합니다. 뭔가 모자란 사람들,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세상처럼요.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단점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그 사람을 깍아 내리고 내가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 단점들을 감싸주고 장점만을 이야기합니다.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인데도 나를 섬겨주고 사랑합니다. 조건없이 나눠줍니다. 욕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따뜻한 말을 해 줍니다. 세상에서는 자꾸 쫓아내려고 하는 데 교회에서는 자꾸 감싸 줍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말하셨습니다. 세상 같으면 당장 파면이죠. 제자에서 쫓아내는 겁니다. 그만큼 잘못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교회는 그런 부족한 사람들도 끌어 안습니다. 그런 착한 사람들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서로를 향한 불편한 시선들이 있지 않나요? 물론 그 시선을 이해합니다.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 맞아요. 그러나 그런 불편한 시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착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막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이 교회에서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먹을 때 교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노숙자라도 이 교회에 오면 사랑해야지 그런 마음일 때 교회는 부흥합니다.
우리 대흥교회가 착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착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찬송 : 569장(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주기도문
기도제목
1.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진리를 선한 삶으로 드러낼 수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3. 착한 성품을 보여줌으로 교회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 배윤순장로님, 조순옥전도사님, 서문재안수집사님, 김은경집사님, 주님의교회 박미선사모님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구인회집사님께서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또한 아픈 분들이 회복되어 다시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5. 몽골선한이웃교회, 백암전원교회, 디딤교회, 주님의교회에 부흥의 역사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6. 가정경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물질에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7. 자녀들이 학교에서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전도할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주일학교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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