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으로 세워지는 교회(사도행전 13:9)
총독의 궁중마슬사였던 바예수가 총독 서기오 바울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힘을 쓰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바예수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바울이 먼저 그리고 바울만 이름이 언급된 것이 중요합니다. 그 전에는 항상 바나바가 사울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나바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바울만이 등장했습니다. 중요한 싸인입니다. 사역의 주도권이 바울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주시고 사역을 명령하시는 성령께서 바울을 들어서 사용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대교체입니다. 임명식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오로지 사역입니다. 누가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가?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었습니다. 연공서열이나 나이 따지지 않았습니다. 학벌이나 로마의 시민권이나 재산을 따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것만을 따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바울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사원칙입니다. 철저히 사역중심적입니다.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 주목하시고 그를 세우십니다. 나이 따지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장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존경과 섬김입니다. 나이가 사역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사역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완벽하게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따지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따집니다. 그렇다고 연장자들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에서는 더 젊은 사람에게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교회 안에서도 이런 원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사역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각각의 사역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다. 나이, 성별, 학벌, 재산 등등 따지면 안 됩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죠. 그 직분을 감당할만한 사람에게 직분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는 직분에 합당한 사람을 세우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실해도 돈 없으면, 좋은 직장 없으면, 학벌 좋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직 믿음이 연약해도 헌금 많이 하면, 좋은 직장이 있으면 직분자가 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힘을 잃어 가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사명 위주로 직분자를 세우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물론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나온 것처럼 새로 입교한 자는 안 됩니다.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온전한 믿음인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났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에 맞춰서 일을 맡겨야 합니다.
문제는 내뺀다는 것에 있습니다. 분명히 달란트가 있어서 그 사명을 감당하면 좋은 데 안 한다고 뒤로 물러난다는 거예요. 모세도 그랬습니다. 충분히 준비되었음에도 저는 입이 뻣뻣하고 둔한 사람입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안 가겠다는 거예요. 하기 싫다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께 혼나고 애굽으로 가서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이뤘습니다.
이런 모세와 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달란트가 없다고 말합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말합니다. 맞나요? 틀리죠! 하나님께서 달란트를 주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섯 달란트냐 두 달란트냐 한 달란트냐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뭔지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 받은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앞장 서야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에게 헌신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한 달란트 받고 땅에 묻어두는 성도들을 양산해 내는 것이죠. 그럼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역자입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사역을 시키려고 하실까요? 고생시키려고요? 아닙니다. 일하는 자들에게 삯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주시면 헌신하겠습니다! 이런 거래는 하지 마세요.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보시고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삶의 행복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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