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성도(사도행전 10:47-48)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그로 인해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베드로와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함께 온 유대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유대인들인 자신들과 같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같은 구원을 받았고 같은 교회에 속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보증하기 위해 베드로는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라고 말했습니다. 세례는 구약의 할례와 같습니다. 언약 백성의 표였습니다. 당연히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려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구원받았는 데 세례를 주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믿음의 고백으로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교회의 공식회원으로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공동의회의 회원이 되게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를 알려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성령은 영이시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세례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눈에 분명히 보입니다. 베드로도 눈에 보이는 세례로 이방인들이 보이지 않는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죠. 중요한 사실은 존재하는 것들은 스스로를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나타내지 않는 것들은 그냥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반드시 자신을 드러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여주시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구하십시오. 그럴 때 받게 될 것입니다. 찾으십시오,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십시오, 문이 열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존재를 행함으로 드러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자랑해도 행함이 없으며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죠. 그렇다면 믿음을 보여주는 행함은 어떤 행함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의 제일이란 결론이라는 의미입니다. 믿음과 소망의 결론은 사랑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은 사랑을 실제로 나타냅니다. 보여지지 않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보여지는 사랑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여지는 것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보여진다고 해서 반드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우리를 어렵게 하죠! 위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는 보이는 것으로 걸러야 합니다. 보여주지도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먼저 보이는 것이 있는가? 이것이 1차 거름망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진짜인가? 판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증거들을 세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의 믿음이 참인가? 내 믿음이 참인가? 알기 위해서는 삶에서 보여지는 믿음의 증거들, 구원의 증거들을 하나 하나 모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아낌없이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눠주는 것,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더 나은 존재로 고백하며 이웃의 종이 되어 발을 씻겨 주는 것,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모이기에 힘쓰는 것,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 등등.
이런 증거들이 내가 구원받은 자임을, 성령이 임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나 교회다니고 있어! 직분자야! 목사야!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진짜 교인이고 내가 진짜 직분자이고 내가 진짜 목사라는 것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보여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상급을 보이는 은혜와 복을 보이는 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