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증명되는 구원(사도행전 10:44-46)
오늘 본문 44절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누구죠? 고넬료와 고넬료의 집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이방인이죠. 그전까지 구원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고넬료에게 또한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45절에 나온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놀랐습니다. 교회가 모든 세상을 향한 문을 연 첫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성령이 내려오시니, 성령 부어 주심이라는 구절은 구원받았다는 표현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서 성령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거예요. 성령을 받는 것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이방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하며 본문은 어떤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지를 먼저 알려줍니다.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44절에서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말씀과 함께 성령께서 듣는 자들의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내가 성령을 선택할 권한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선택권을 가지시고 듣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다고 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고 있었지만 듣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꼬투리 잡으려고만 했습니다. 자기 할 말만 생각했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려고만 했습니다. 당연히 성령이 임할 수가 없죠. 듣기는 했지만 성령이 임하지 않은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교회의 머리를 핍박한 것입니다.
반면에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은 사도행전 10장 33절 말씀처럼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백하며 들었습니다. 마음의 밭을 갈고, 마음을 열고 들었습니다. 그럴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들음으로 믿음이 생긴 것이죠. 직접 예수님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했는 데,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성령이 임한 것에 대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46절에 나오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인 것입니다. 방언이 임했다는 것은 은사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구원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은사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은사 곧 부르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시는 목적입니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은사입니다.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 은사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신 은사가 분명하다면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데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는 데 사용되어 집니다. 그렇지 않고 은사를 자랑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를 말씀하고 난 뒤에 13장에 가장 큰 은사를 보이겠다고 하며 사랑을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는 참된 은사에는 사랑이 반드시 보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성령의 은사처럼 보여도 사랑이 없다면 진짜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구제하고 내 목숨까지 내어 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큰 일은 사랑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은사를 드러냄으로 인해 사랑이 풍성해지며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드러낸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자신이 드러나며 다툼과 미움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고 구원받게 됩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은사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큰 일에 힘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자녀로 받아들이시며 아낌없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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