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복음(사도행전 9:43)
초대교회는 고난 중에서 부흥했습니다. 또한 부흥하고 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사방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는 곳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베드로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유명해지면 어김없이 교만이 생깁니다. 교만은 차별을 만들어내죠. 다른 사람들과 다른 대접, 특별한 대접을 받기 원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생각이 들죠. 나는 너보다 더 뛰어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호텔을 가도 최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묵어야 하고 식사도 비싼 것을 먹게 됩니다. 차도 좋은 차를 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더 특별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고 그로인해 교만해지는 것을 누가 탓하겠습니까? 그런 능력을 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만해지면 수군거리겠지만 놀라운 능력을 행했기에 교만한 모습을 보여도 사람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베드로가 욥바에서 여러 날을 지내며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두장이는 짐승을 죽이고 그 가죽과 털을 벗겨서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죽은 짐승을 다뤘기에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자로 여겨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작업할 때 지독한 냄새가 났기에 사람들이 기피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바로 그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베드로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비다를 비롯해 욥바에 사는 유력한 자들이 베드로를 자신들의 집에 초청했을 것입니다. 숙박을 제공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렇게 좋은 숙소를 다 마다하고 냄새나고 부정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믿는 자의 삶이 무엇인가?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비다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자가 아니었습니다. 과부들을 구제하는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결론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잘 알았습니다. 비록 자신이 놀라운 역사로 인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있지만 놀라운 역사만큼 중요한 것은 사랑과 겸손과 섬김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원했습니다. 복음은 따뜻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룩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이 뭐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아니 하나님 자신이시면서 이 땅에 태어나신 후에 짐승의 먹이통에 누이셨다는 것입니다. 사역하시며 주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소외받은 자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거룩입니다.
베드로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들어간 것이 바로 거룩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닮아감의 곧 거룩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거룩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베드로가 그 복음을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거하는 것으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큰 지, 얼마나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 교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시설에 대해서, 찬양팀에 대해서, 성가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보여줘야 합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가 얼마나 고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오늘 베드로처럼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거룩을 또한 보여줘야 합니다. 다양하고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교회가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지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많은 사역을 능력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도전하는 일들이 정말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위대한 사역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복음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사역과 헌신의 마무리로 사랑, 겸손, 섬김을 보여줘야 합니다. 위대하게 하나님을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차별하지 않고 내 주변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히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들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전한 복음이 진짜 복음이 됩니다. 내가 행한 능력이 참된 능력이 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