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게 하시는 은혜(사도행전 9:30)
헬라파 유대인들은 진리를 증거하는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뒤에 사울은 다소로 갔습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이죠. 금의환향이 아니었습니다. 성공해서 박수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꼬였습니다.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기 전까지 사울의 인생은 실패가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버지 덕에 다소에서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유대교 안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오는 일만 잘 감당하면 차세대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성공적인 인생, 커리어를 다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전의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이방인의 사도라는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사울 자신이 원한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로부터 모든 일들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서 묵상하고 훈련받고 다메섹에 돌아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럴 때 능력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광주리에 몸을 우겨 넣고 탈출했습니다. 마치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 앞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한 것과 같은 장면입니다.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했는 데 오히려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왜 나를 도와주시지 않나요? 이런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갔는 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의 중재로 가까스로 동역자가 되어 담대히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고향 다소로 도망쳤습니다. 가족들 보기에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예수 믿어서 잘 된 게 뭐 있냐? 이 물음 앞에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 비전을 주신 자들을 돕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에 있습니다. 성경은 사역의 초반 넘어지고 실패했던 사울이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되어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기록하며 작은 예수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보다 장차 다가올 영광을 더 크게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쓰시는 일꾼들을 먼저 고난의 늪에 던져 넣으십니다. 시험하시는 것이죠.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주인공은 첫째 아들이 아닌 탕자였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고난받고 돌아와서 다시 아들이 되었습니다. 참 아들이 된 것이죠. 고난이 그를 아들로 온전히 세웠던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큰 아들은 아버지께 대드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고난 속에 집어 던지시는 것입니다.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고난받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 고난 속에서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난 속에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고난이 결코 유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 특히 고난받는 중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을 들어 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패턴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절망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고난의 현장이 힘듭니다. 고통이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를 단련하신 이후 내가 순금이 되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을 우리는 붙잡아야 합니다. 불과 같은 고난을 통해 나의 모든 죄악과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그로 인해 순금과 같은 인생을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보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게 닥친 고난의 때가 바로 주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때인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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