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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6일 주일설교요약
운영자 2024-05-25 추천 0 댓글 0 조회 121

성령충만 사랑충만(사도행전 8:14-17)

 

빌립이 사마리아성에서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해 많은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교회에 있던 사도들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파송했습니다. 파송한 이유는 확인과 격려와 교제 때문입니다.

사마리아로 내려간 베드로와 요한은 15절 말씀처럼 가자마자 사마리아성도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는 16절에 나온 것처럼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세례를 베풀기는 했지만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였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사마리아사람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세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빌립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마리아성의 남녀도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안수했습니다. 말씀을 표면적으로 보면 믿고 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온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구원받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물과 성령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물은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물세례는 누가 받는 것이죠? 사마리아 성의 남녀들과 시몬처럼 믿는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베풉니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받을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보고 물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게 생기죠?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 동시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빌립에 의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 데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으로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미 믿음이 있는 사람, 성령을 받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들은 그들에게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했을까요? 그 답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사도들도 사마리아에서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 속에 성령이 임재하고 계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강하게 지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들에게 은사도 나타나고 헌신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마치 성령이 없는 것처럼, 성령을 받지 않은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금 사마리아성이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령충만을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런 상황들이 익숙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죠. 예수님께 부름을 받을 때 이미 성령이 임하시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충만의 역사가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 은사와 능력이 더해졌습니다. 그 사실을 사도들이 잘 알고 있기에 사마리아성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지길 기도했고 그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을 때는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우리가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이라는 역사를 부어주십니다. 은사도 부어주시고 능력도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받고, 능력을 경험하며 신앙생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성령의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사가 펼쳐질 때 교회가 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은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거짓된 은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가장 큰 은사가 사랑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충만으로 나타나는 모든 은사와 능력의 최종목적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결과가 나와야지 성령충만입니다. 은사와 능력을 자랑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은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뚜렷한 은사와 능력이 보여지지 않아도 사랑이 충만하면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것이 곧 표적입니다. 은사이며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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