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라도 좋습니다(마태복음 26:33-35)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2천년 전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그 길에 자신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펼치며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 외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고난과 십자가 직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최후의 만찬 이후 겟세마네로 가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가슴 아픈 말씀이죠.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버릴 것입니다.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33절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외쳤습니다. 나는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장담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장담했습니다. 허세를 부린 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한심하게 보셨을까요? 부인할 것을 아셨으니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견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그 말이 고마웠을 거예요. 물론 지키지 못할 약속입니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죠! 죽으셔야죠. 저는 살기 위해 도망 갈 거예요. 이렇게 말을 했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베드로는 거짓말하는 것 아닙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죽기까지 할 각오였습니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했을 따름이예요. 그래도 주님을 사랑했기에 허세를 부린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마음에 큰 힘을 얻으셨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그런 허세로 인해 주님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장담을 하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을 했는 데 결국 세 번이나 부인했으니까요. 얼마나 그 자신이 부끄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장담했기에 회개할 수 있었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장담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사라졌을 거예요. 오늘 말씀 35절에는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 도망갔죠! 그러나 그런 허세가 있었기에 이들 모두가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런 허세가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담은 허세죠! 다윗은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허세죠! 골리앗이란 엄청난 장군과 싸우러 나가면서도 갑옷도 투구도 입지 않았습니다. 물맷돌 들고 나갔습니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두 번이나 살려줬습니다. 허세의 왕이라고도 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허세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게 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미리 안 된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냉정해 보입니다. 똑똑해 보입니다. 그런데 열정이 없죠. 십자가 지러 가는 주님께 잘 가세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허세도 괜찮습니다.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이죠. 교회에 대해서도 부흥될 수 있다! 말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공동체도 허세를 부리지 않고 부흥될 수는 없습니다. 허세를 부리는 공동체가 다 부흥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세를 부리지 않는 공동체는 결코 부흥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마음을 담은 허세여야 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허세여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허세는 교만입니다. 교만과 허세의 차이는 사랑에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사랑을 담고 있으면 허세이고 사랑이 없으면 교만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내게도 가족에게도 교회에게도 허세 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안 된다, 못한다, 포기해야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허세가 우리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나와 내 가정과 우리 교회와 이 나라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종려주일에 이어 고난주일입니다. 고난만이 아니라 승리를 바라보며 도전하며 이 한 주간을 믿음으로 이겨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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