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도 없는 사랑(사도행전 13:18-19)
율법에 정통한 학자인 사도 바울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 네 권의 율법을 18절 한 절로 요약했습니다.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광야 40년을 스데반은 광야교회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신 사건을 통해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이 광야교회는 모든 교회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기 원한다면 광야교회를 보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광야 교회를 언급한 뒤에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소행이란 그들의 광야에서 행한 바를 의미합니다. 부정적인 의미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금송아지 우상 숭배를 비롯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못난 행동, 못된 모습만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를 부정했습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쓸어 버리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9절에 나온 것처럼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광야에서 불평한 자들은 심판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 광야교회의 성도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잘해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들어갈 자격이 있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죠.
사도 바울이 요약한 것처럼 참으시고 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한 광야교회를 참으셨습니다. 여기서 참으셨다는 것은 부모처럼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못난 모습, 못된 모습을 보인다고 부모는 자녀를 내쫓지 않습니다. 참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하나님이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렇게 못나고 못된 모습, 죄악된 삶을 살아갔지만 사랑하기에 참으셨습니다. 진짜 사랑입니다.
잘 해서, 잘 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죠. 못 해도, 못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유는요? 없죠. 내 자녀이고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행을 참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랑할만한 자격이 전혀 없어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인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죠. 앞서 말씀한 것처럼 광야교회가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입에서 감사와 찬송이 나오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더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서로를 대적하며 다투고 싸웁니다. 도무지 사랑할만한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행을 지금도 참고 계십니다.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약속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국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신 것처럼 우리를 영생과 부활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어떤 모습이건 끝까지 참아주시는 하나님,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조금이라도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못난 나를 참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일까요? 심은대로 거두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참아주셨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을 참아주면 됩니다,
원수와 같은 사람,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 죄지은 사람, 못난 사람,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일백 데나리온 빚지고 갚지 않은 파렴치한 놈이라도 탕감해줘야 합니다. 이미 내가 일만 달란트의 용서를 받았으니까요. 이제는 내 차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라고 주기도문을 통해 예수님 알려 주신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유산 받아서 다 탕진한 못난 아들을 다시 끌어 안고 입 맞추고 가락지 끼워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이게 진짜 사랑입니다.
우리 안에 이 사랑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도가 없는 사랑입니다. 끝까지 참아주는 사랑입니다. 죽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랑입니다. 잘 못해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해도 그것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사랑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 즉 내가 먼저 그리고 더 풍성한 사랑을 받았기에 마땅히 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함께 영생의 길을 걸어가는 대흥의 모든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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