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리스도인인가?(사도행전 11:25-26)
오늘 말씀에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가장 처음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누가 불렀죠?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이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을 보며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달라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이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의 특징을 잡아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과 똑같은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궁금해서 알아보니 안디옥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던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 호칭이 중요한 것은 구원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곧 성도를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는 성도가 있고 교인이 있습니다. 성도는 마땅히 교인이죠. 그러나 교인이라고 다 성도는 아닙니다. 교인은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예요.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인가요? 이 질문은 구원받았습니까? 이런 질문과 같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요? 도대체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말했을까요?
바로 포용과 사랑입니다. 안디옥에는 예전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을 짓고 그들끼리만 어울렸습니다. 이방인들을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를 세운 유대인들은, 그 교회에 목사로 파송되어 온 바나바는 유대인임에도 이방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눴습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품어주었습니다. 포용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존중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용서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품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안디옥의 성도들은 그대로 재현하여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방인들이 놀랄 수밖에요.
안디옥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교회가 부흥한 이후에 다소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으로 초빙해 왔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뛰어난 인물임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위대한 사명을 감당할 것을 잘 알았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에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물론 이방인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마치 부흥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다른 목사와 동역하며 그를 담임목사로 세우고 자신은 부목사가 되는 경우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던 바나바가 기꺼이 사울을 초청하여 그를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렸습니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누이실 곳이 없어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자라신 곳도 천대받던 갈릴리 나사렛 지역이었습니다. 사역하시면서도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노숙하셨습니다. 나그네로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용납하시고 포용해 주셨습니다. 품어 안아 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나바가 보여준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성도들도 놀랐습니다. 더 놀란 것은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용서와 포용과 용납입니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세상이 우리를 보며 그리스도인이다 다시 말하게 될 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된 성도들에게 은혜와 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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